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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人터뷰] 예능으로 거듭난 허재, “그래도 농구인은 코트에 있을 때 멋있어 보인다”
2020/07/02

<예능인의 삶을 살기 시작한지 어느덧 1년. ‘뭉쳐야 찬다’를 시작으로 방송 예능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허재 전 감독이 오랜만에 농구공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사진=이영미)>

 

2019년 허재 전 감독이 JTBC ‘뭉쳐야 찬다’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평소 그의 성격이라면 예능 출연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구도 아닌 축구를? 호기심을 안고 방송을 챙겨봤다. 재미있었다. 배꼽 잡고 웃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코트에서 보인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저질 체력과 허당 이미지로 원망과 구박을 한 몸에 받는 ‘아재’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몇 주 출연하다 말 줄 알았던 예능 나들이는 어느새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제작진도 길어야 12주 정도 하고 접을 거라 생각했다는 ‘뭉쳐야 찬다’가 1주년을 넘어섰고, 허 전 감독은 ‘뭉쳐야 찬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외형을 확장하고 있다.

얼마 전 허 전 감독은 한국소비자포럼이 주최하는 ‘2020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에서 인물·문화 부문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테이너로 선정돼 시상식을 가졌다. 지금까지 농구로 수상한 경험은 많았지만 예능인으로 상을 받은 건 처음이라 수상 소감을 말하는 게 굉장히 어색했다고 말한다.

카리스마에서 허당 이미지로 인기몰이

“농구 선수로, 지도자로 상을 받으면 나름 정해진 수상 소감이 존재한다. 선수들에게 고맙다든지, 구단주에게 감사한다든지 하는 레퍼토리가 나오기 마련인데 예능인으로 상을 받게 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상을 받아서 좋긴 한데 그 감정을 전하는 게 어색했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대중들에게 기쁨을 주긴 했나? 과연 내가 무엇을 해서 이 상을 받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마침 예능에 발을 들여 놓은 지 1년 되는 시기에 받은 상이었다. 허 전 감독으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수상이다.

“‘뭉쳐야 찬다’가 발판이 돼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보니 1년이란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얼마 전 ‘뭉쳐야 찬다’가 1주년 기념 방송을 했는데 그 방송 녹화하면서 알았다. 내가 예능한지 1년이 됐다는 사실을.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예능은 리액션도 중요하고, 자신을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기분 나쁜 상황도 웃음으로 넘겨야 한다. 농구에서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방송은 절대 최고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경험이 새로웠다. 무엇보다 농구 팬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부분이 신기했다.”

허 전 감독은 방송을 시작하면서 술자리를 피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특히 몸을 써야 하는 방송 녹화를 앞두고선 이틀 전부터 몸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농구하는 체력과 방송하는 체력은 별개인 것 같다. 스포츠는 2시간 안에 승패가 결정되지만 방송은 시작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녹화가 길어지면 체력적으로 지치게 된다.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주지 않으려면 몸 관리는 필수인 것 같다.”

허 전 감독이 ‘뭉쳐야 찬다’에 출연하게 된 배경에는 담당 CP(책임 프로듀서)가 한 달 동안 삼고초려의 심정으로 허 전 감독을 설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농구 관련된 제안을 받았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출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축구를 한다니까 그 제안이 귀에 들어왔겠나. 내가 농구에서는 대통령이란 소리까지 듣는 사람인데 느닷없이 축구 관련 예능을 시작한다면 농구 선후배들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싶었다. 방송국에서 한 달 넘게 나를 설득했다. 마침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 농구 아카데미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던 각 종목별 레전드들이 모여 팀을 결성한다는 이야기에 넘어갔다. 마침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허 전 감독한테는 농구 해설위원 제안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정중히 거절하며 거리를 뒀다.

“내가 말재주가 없는 편이다. 지인들과의 자리에선 농담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던지지만 경기를 보며 해설하는 건 정말 자신이 없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허)웅이랑 훈이가 뛰는 경기를 중계할 자신이 없었다. 아들이 못할 때는 욕도 해줘야 하는데 그걸 참고 방송용 언어를 내뱉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웃음).”

<2009년 5월 1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허재 전 감독의 모습.>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금의 모습을 봤다면?

상명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농구. 선수로, 지도자로 40년 넘게 농구와 함께 했던 삶이 예능인으로 새로운 전개를 맞이한 지금, 고인이 된 부친 허준 옹이 살아 계셨다면 아들의 이런 변화에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 허 전 감독은 “내가 농구계를 나와 두세 달 정도 쉬고 있었다면 아버지는 내가 예능하는 걸 보시기 전에 화병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버지의 인생은 허재였다. 내 위로 누나 두 분, 형 한 분이 계시는데도 아버지의 삶은 온통 허재 밖에 없었다. 당신의 모든 걸 농구하는 아들한테 쏟아 부으셨기 때문에 내가 만약 감독직에서 물러나 백수가 됐다고 말씀드렸다면 주위 사람들 욕하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절대로 아들이 잘못해서 사퇴한 게 아니라 선수들이 못해서 그만뒀다고 생각하실 분이다. 아버지한테 만큼은 농구하는 허재, 농구 지도자인 허재가 최고였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들을 봤다면 이런 이야기를 전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와이프나 큰형님처럼 똑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너 거기 나가서 뭐 하는 짓이야?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이다. 이전에는 남자가 얼굴에 화장하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방송 전에) 하니까 묘한 생각도 든다.”

허 전 감독은 ‘뭉쳐야 찬다’ 방영 초기에 축구 룰을 모르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한 번은 방송이 나간 후 자신이 운영하는 농구 아카데미의 초등학생 한 명이 허 전 감독에게 “왜 이렇게 축구를 못하느냐”고 항의를 했다는 후문이다.

“우리가 한일전을 보더라도 승패를 보는 거지 오프사이드가 뭔지 사이드라인이 어딘지 알고 축구를 보는 게 아니지 않나. 경기 룰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방송을 시작한 거라 골키퍼가 우리 편 선수의 백패스를 손으로 잡으면 안 되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그때 창피하더라. 아무리 허당 이미지라고 해도 농구 선수나 감독 때는 카리스마도 있고, 어디를 가도 폼 좀 잡고 다녔는데 그마저 다 사라졌으니…. 그런데도 주위의 반응이 좋았다. 허재한테 이런 인간적인 면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매일 화내고, 욕하고, 전투적으로 살던 사람이 마냥 웃고, 편안한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니까 그게 더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 웬만하면 잘리지 말라고, 방송국에서 잘리면 갈 데도 없으니까 더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주는 지인들도 있었다(웃음).”

<예능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럼에도 농구인은 코트에 있을 때가 멋있다고 말하는 허재 전 감독.(사진=이영미)>

그럼에도 코트가 그리운 ‘농구 대통령’

이야기의 화제를 농구로 옮겼다. 허 전 감독은 전주 KCC에서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했다. 2008-2009시즌과 2010-2011시즌이었다. 그는 농구 감독으로 처음 경험했던 2008-2009시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이 정말 짜릿했다고 말한다. KBL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포스트시즌 17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전자랜드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3승2패, 동부와의 4강 플레이오프도 3승2패,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은 4승3패를 기록하는 등 모든 경기를 치른 다음의 우승이라 더 감격스러웠다. 주위에서 “아직도 농구하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내 기억으로는 5월 초에 우승이 확정됐을 것이다(5월 1일). 그때 정말 행복했다. 내가 처음 KCC 감독을 맡았을 때 허재는 감독감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구단에서는 잘하든 못하든 허재라는 감독을 믿어줬고 우승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지금도 그 부분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명예 회장님, KCC 관계자 모든 분들이 감독 허재의 발판을 만들어주셨다. 그 고마움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이름 앞에 ‘전(前)’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감독 출신에게 감독이란 어떤 자리냐고 물었다. 경기 결과에 따라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삶, 승부의 세계에서 마치 작두를 타는 듯 아슬아슬한 삶의 연속인 감독의 세계를 어떻게 표현해낼지 궁금했다.

“밖에서 보면 감독이란 자리는 아주 품위 있고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코트 안에 섰을 때의 감독은 속이 다 병들어 있다. 마치 오늘 내일 하는 사람마냥 조마조마하게 산다. 분명 감독이란 자리는 매력있지만 길게는 못할 것 같다. 우승을 자주 한다면 몰라도 매번 지는 감독들은 오늘 책상 빼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구단은 인내심이 많지 않다. 감독이 성적을 내지 못하면 방을 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KCC 감독을 맡았던 나는 행운아였다.”

허 전 감독은 2016년 6월 국가대표 전임 감독을 맡았다. 이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인 허웅, 허훈을 대표팀 명단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특혜 발탁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친 허 전 감독은 귀국 후 기술위원회가 전원 사퇴하고, 두 아들이 농구월드컵 예선 명단에서 빠지자 사의 표명하고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당시의 일을 떠올린 그는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감독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당연히 책임을 지려고 했다. 그런데 절차가 잘못됐다. 기술위원회가 사퇴하기 전 내가 먼저 사퇴 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한다. 그 절차가 무너졌고 마치 뒤늦게 사퇴 발표한 것처럼 비춰진 게 정말 마음 아팠다.”

<대표팀에서 만난 허웅과 허훈>

대표팀 아들 발탁 논란에 대해

당시 허웅과 허훈을 뽑은 것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오세근 등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고 가드 라인에 허훈이 필요했다. 허웅은 이전 경기에서 3점슛 등으로 승리하는데 도움을 줬다. 신장은 작지만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해서 강행했는데 주위에서 크게 만류했다. 둘 중 한 명만 뽑으라고, 둘 다 뽑았다가 나중에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하느냐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뽑은 선수들이라 결과에 대해선 책임 질 생각이었다.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아시안게임이었는데 동메달에 그쳤으니 책임질 각오도 했다. 그런데 기술위원회가 먼저 사퇴할 줄은 몰랐다.”

허 전 감독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허훈이 정규리그 MVP를, 허웅이 인기상을 차지했을 때 응어리졌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고 한다.

“두 아들이 농구하면서 아버지 그늘에 있는 부분이 부담스러웠을 텐데 그걸 잘 견뎌낸 것 같아 대견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기특해 보이더라.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허재라는 이름보다 웅이, 훈이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도 기분 좋다.”

마지막으로 “예능하면서도 때로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가 그립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허 전 감독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이런 대답을 들려준다.

“그립다. 왜 안 그립겠나. 농구인은 농구판에 있는 게 훨씬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시 (감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농구 감독 그만두고 나왔을 때 내게 새로운 길을 찾아준 게 예능이다. 지금이 즐겁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경기 졌다고 욕먹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코트가 그리운 건 사실이다(웃음).”

<이영미 기자>